학생운동도 충분히 경험하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경험한 내 입장에서 학생운동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학생운동도 계급 재생산의 기제 아닌가" 라는 의심을 거둘수가 없다.
학벌이 좋은 운동권 학생과 지방대, 전문대 운동권 학생간의 차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 뿐 아니라 잘 거론되진 않지만, 운동권 학생의 졸업 후 진로에 학벌만큼 중요한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모의 재력이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동기라 할지라도 재력이 됫받침되는 집의 자식들은 대학원 진학, 유학등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고 운이 좋으면 한국에서 교수자리를 꿰어 찰 수 있다. 또는, 사법고시에 합격 할 때까지 집에서 전폭적인 후원을 해줄 수도 있다.
아니, 집이 부자이면 무엇을 하든 다른 동기들보다 '더 오래, 더 잘' 할 수 있다. 최고급 전자악기에, 별도의 연습실을 갖춰놓고 '문화운동'을 하는 이들과 끽해야 운동장에서 꽹과리나 치는 이들의 차이는 굳이 이야기 필요조차 없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매년 여름방학마다 부모의 돈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오는 이와 고작해야 찍찍이로 테이프나 듣는 이의 차이도 물론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의 재력에 힘입어 자신의 재능을 키운이들이 운동판에서도 가난한 집 아이들을 압도한다. 소위 '문화역량'이나 '국제연대역량'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운동판에서 중요한 언변, 글재주는 또 어떤가? 지식인, 중산층 부모를 둔 아이들이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을 말 그대로 '압도'했다.
더 가슴아픈 사실은, 대부분의 학생운동가들이 문화, 젠더, 환경 등의 '전망이 보이는 곳' - 운동을 그만둬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곳 - 으로 몰려갈 때 마지막까지 '노동해방'이라는 화두를 부여잡은 이들이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계급 출신의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 출신이었다. 그래서일까, 대학 시절 내내 그들과 어울려 그들의 면면을 조금은 아는데, 90년대 초반까지는 순전히 '이념'으로 '노동해방'을 외치는 이들이 많았다면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노동문제를 '자신과 가족의 문제'로 인식하고 운동에 뛰어든 이들의 비율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처럼 마지막까지 '노동해방'의 깃발을 들고 싸우던 이들은, 정말 너무나 존경스럽게도, 80년대 식으로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하거나 학교를 때려치우다 시피하고 신생노조에서 상근자로 일했다. 나는 그들의 그런 행위를 더할나위 없이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존경심과 별개로, 한발자욱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부모처럼 사회 경제적으로 최하층'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저 그룹에서 유독 대학 중퇴자들이 많이 나왔다. 그들이 학교를 나온 후에 할 만한 것은 노조 상근자나 학원 강사, 공무원 시험 준비 정도였는데 그 어떤 것도 사회경제적으로 '괜찮은' 직업은 아니었다.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학교도 때려치우다 시피하면서 운동에 투신하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 예컨대 중병으로 인한 가족의 입원, 가족의 부채 등 - 운동을 접어야 되는 사연일 것이다. 이 경우 이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잔인한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되고 말그대로 '최하층'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기껏 명문대에 입학시켜 신분상승을 시켜보려했지만 스스로 팽개치고 부모의 계급으로 복귀한 셈"이다. 이런 경우는 극단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례가 꽤 된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잘 보여주듯이 부잣집 아이들은 학생운동을 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되면 그 결과는 모 아니면 도가 된다. 아예 운동으로 승부를 보거나 뒤늦게 직업을 구하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학생 때는 '왜 가난한 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대거 뛰어들지 않는가?' 라고 의문을 품고 심지어 바난까지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들은 나름대로 '가난한 운동권의 미래'에 대한 직관을 가졌던 듯 하다. 그렇게 1학년때 열심히 운동하다가 겨울방학 무렵 그만둔 친구들은 대체로 열심히 살고, 학점도 관리를 잘해서 "노동계급탈출, 신분상승"을 이루었다. 그들의 그런 선택을 비난할 수 만은 없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학생운동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현실로 존재하고 학생운동도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수정1.학생운동하다가 신세 망친다는 시중의 이야기에 대한 인용을 삭제했습니다.
*첨부1. 삭제한 문장은 ["학생운동하다가 신세망친다"는 이야기가 괜한 이야기는 아니다.(이데올로기가 단순히 거짓말은 아니다.)]
라는 문장이며 Kongsatang님이 지적하셨듯이 불쾌감내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에 삭제했습니다.